제목 | 인도네시아 독립영웅이 한국인이었네…그의 이름 딴 도로 생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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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3-11-10 19:21 |
전북 완주 출신 조선인 양칠성 인니 점령하려던 네덜란드 맞서 ![]() 인도네시아 독립 관련 다큐멘터리에 담긴 양칠성(왼쪽)의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위해 싸운 조선인 ‘폭탄 전문가’ 양칠성의 이름을 딴 도로가 생겼다.
10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트리뷴 뉴스 등에 따르면 서자바주(州) 가룻군(Garut Regency)은 인도네시아 영웅의날을 맞아 가룻군에 이바지한 교육자와 영웅 학자 등의 이름을 딴 27개의 새로운 도로명을 사용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인도네시아 독립 영웅 양칠성의 이름을 딴 ‘잘란 코마루딘(양칠성)’도 포함됐다. 코마루딘은 양칠성의 인도네시아 이름으로 ‘찬란한 빛’이라는 의미다. 새 도로명의 공식 표기 역시 코마루딘 뒤에 양칠성(Yang Chil Sung)이라는 한글 이름을 병기하기로 했다.
가룻군은 과거 팡에란 파팍 유격대(PPP)의 기지가 있던 치피쿵 마을의 한 도로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고 밝혔다. 팡에란 파팍 유격대는 양칠성이 소속됐던 부대다.
양칠성은 지난 1919년 전북 완주에서 출생, 1942년 일본군의 연합군 포로 감시원으로 인도네시아 땅을 밟았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350년간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를 받다가 일본에 점령된 상태였다.
3년 뒤인 1945년 일본은 패전했고,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다시 점령하려 했다. 인도네시아가 이에 맞서면서 4년간 치열한 독립전쟁이 벌어졌다.
양칠성은 이때 인도네시아에 남아 독립군으로 합류했다. 폭탄 전문가로서 네덜란드군에 대항했으나, 결국 네덜란드군에 붙잡혀 처형됐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난 1976년 그를 외국인 독립 영웅으로 추서했다. 양칠성의 유해는 가룻 영웅묘지로 이장됐으나, 이때까지만 해도 ‘야나카와 시치세이’라는 일본 이름이 사용됐다. 양칠성이라는 한글 이름으로 바뀐 건 1995년 8월에서였다.
인도네시아에서 양칠성에 대해 연구한 역사 연구 재단 ‘히스토리카 인도네시아(Historika Indonesia)’의 창립멤버이자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든 언론인 헨디 조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201 8년 히스토리카가 가룻군에 양칠성의 이름을 딴 거리를 만들자고 제안했는데 이번에 실현됐다”며 현지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출처: 매일경제 이상현 기자 |